초들님 이야기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주세요 본문
교장 재직 시 일이다. 3학년 담임이었던 A교사는 ‘B학생이 수업 시간에 몇몇 친구들과 수업을 방해해 정상적으로 수업을 할 수도 없다’며 학생위기관리위원회 소집을 담당 교사에게 요청했다고 했다. 이후 A교사는 필자에게 B학생 문제를 상담해왔다. 내가 “선생님, 수업 방해와 학습 평등권 침해는 심각한 문제인데 증거가 있나요?”라고 물었고 A교사는 “네. 교장 선생님, 잠시만요. 상담기록부 가져올게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 A교사가 가져온 상담기록부에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과의 상담, 연루된 친구들과의 상담, 목격 학생에게 받은 확인·진술 내용, 관계 학부모와의 상담 기록, 전화 통화 내용, 문자 메시지 발송·수신 내용, 이메일 발송·수신 내용, 교과전담교사의 진술 및 의견, 선생님의 병원 진료 내용 등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A선생님께 너무 미안했다. 학생과 학부모와 신경전은 선생님을 숨 막히게 했을 텐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필자는 즉시 관련 학생의 부모에게 상담 기록을 보여줬고 “자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학부모는 아이와의 시간을 위해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났고 B학생은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환영받는 좋은 학생이 됐다.
오늘날의 교육 현장은 선생님들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당하는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해 흔히 상실의 시대라고 말하는 세상, 무의미한 증오로 점철된 세상, 관계의 단절과 가정의 해체와 사회 전체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심리적인 안정성이 무너진 교사들의 심정을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하고 위로해야 할까?
이범희 서울양정고등학교 교장은 한 인터뷰에서 “요즘 학교는 민원공화국이다. 걸핏하면 교육청에 전화해서 항의하고 민원을 제기한다. 이를 처리해야 하는 교사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 선생님은 ‘선생’으로 학부모는 ‘학부형님’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교사 10명 중 3명만 “다시 태어나도 선생님”...교직 만족도 뚝’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도 봤다. 교원들은 그동안 과도한 업무와 지나친 학부모 민원에 대한 어려움으로 교사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 학생에 대해 책 한 권 이상의 상담 기록을 쓰지 않고 수업에 전념하는 선생님, 민원공화국이 아닌 민원 없는 안전한 학교, 다시 태어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선생님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어갈 수 없을까?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교육입국을 위해 새 정부에서는 ‘공정과 정의’의 원칙을 교육에서부터 바로 세워 교육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꼭 만들어 주길 기대해본다.
김O호 前 수원 영덕초교 교장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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